노블레스 오블리주
국무령 이상룡 기념사업회 창립대회
국무령 이상룡 기념사업회(회장 이종주)는 10월 17일(금) 오전 10시30분 안동 임청각(보물 182호)에서 창립대회를 개최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선생의 업적을 전하는 활동에 들어간다.
이번 창립대회는 다가오는 2015년이 석주 이상룡 선생이 임시정부 초대국무령이 된지 70주년이 되는 해이고, 선생의 뜻과 활동을 후세에 알릴 수 있는 기초를 만들기 위해 마련됐다.
선생은 1858년 안동 임청각에서 고성이씨 종손으로 태어났으나 안락한 삶을 뒤로 한 채 1894년 의병을 시작으로 재정적인 지원과 함께 직접 의병에 가담했다. 그 후 다각도로 기울어가는 조선을 일으켜보려고 유림을 중심으로 많은 활동을 하였으나 결국 1910년 나라를 잃었고 선생은 지역의 많은 선후배를 이끌고 돌아올 수 없는 중국 망명길에 올랐다.
고향과는 전혀 다른 풍토에서 많은 희생을 치루고 최초의 독립운동기지인 경학사를 서간도에 만들고 민족정신을 이어주기 위한 교육 사업에도 힘을 쏟았다. 선생을 중심으로 한 가장 큰 독립운동가 조직을 이끌고 1925년 사분오열하는 임시정부의 힘을 통합하기 위해 임시정부 초대국무령으로 취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였으며 1932년 순국하시는 그날까지 후배 독립운동가들을 이끌고 변하지 않은 독립운동정신을 보여주었다.
선생은 유언으로 ‘나라를 찾기 전에는 내 유골을 고국으로 가져가지 말라’, ‘진실로 참다운 성실이 있다면 목적을 이루지 못함을 근심할 필요가 있겠는가?’ 라는 말을 남겼다.
국무령 이상룡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석주 이상룡 선생을 시작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임청각의 사람들의 정신과 삶을 되짚어보기에 늦은 감이 있으나 이번 창립대회를 계기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석주 이상룡선생과 안동지역의 독립운동가들의 평가가 다시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자료제공, 복지행정담당>
국무령 이상룡 기념사업회- 창립취지문
“나라를 지키기는 쉽다. 그러나 잃은 나라를 찾는 것은 백배 천배 더 어렵다.” 우리민족은 이미 이를 몸서리치게 경험한 바 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중심에서 오직 나라를 되찾고 민족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치신 이가 있으니 바로 이상룡 선생이시다. 안동의 500년 된 고택 99칸 임청각(보물 182호)의 종손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역임하신 민족의 큰 지도자이시다.
영남의 대표 적인 유학자였던 선생은 1910년(경술년)에 나라가 망하자 풍족하고 안락함이 보장된 삶을 버리고 모든 재산을 처분해 친족 50여 가구를 이끌고 중국으로 망명을 떠났다.
그는 서간도 최초의 독립운동기지인 경학사를 만들어 경술국치 후 척박한 땅 만주로 이주해온 수십만 이주 한인들의 경제적 법적 정착을 이끌었고 2세들에게 민족혼을 심어주기 위한 교육에 주력 했다.
그의 높은 인품과 리더십은 일제에 철저하게 짓밟히고 파괴되어 버린 이주 한인들의 삶에 희망의 횃불이 되었다.
그는 또한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수많은 독립군을 양성하고 청산리 등 독립전쟁의 지휘관들을 키우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노년까지 곳곳에 흩어진 독립운동 기지들을 통합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던 그는 1932년‘나라를 찾기 전에는 내 유골을 고국으로 가져가지 말라’,‘진실로 참다운 성실이 있다면 목적을 이루지 못함을 근심할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말을 남기고 순국하시었다.
선생의 뜻은 아들(濬衡) 손자(炳華)로 이어져 3대가 혹독한 감옥살이와 온갖 고초를 겪으며 항쟁을 계속하였다.
이에 임청각에서 출생하신 분 9명(상룡ㆍ아들 준형ㆍ손자 병화ㆍ동생 상동ㆍ봉희ㆍ조카 형국ㆍ운형ㆍ광민ㆍ승화)이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는, 등 한 집에서 많은 독립투사가 배출되었다.
외아들 준형은 귀국한 뒤 십여 년 간 일본에 협조할 것을 강압 받다가 1942년 9월 2일 생일을 택해 “일제치하에서 하루를 더 사는 것은 하루의 수치를 더 보탤 뿐이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셨다.
2009년 임청각은 나라에서 현충시설로 지정되었고 오늘날 독립운동의 성지로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선생의 높은 정신을 추모하고 있다.
이름 높은 명문가 출신으로 온 집안과 전 재산을 걸고 나라를 구하는데 헌신한 선생의 삶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삶인 것이다.
우리에게 나라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나라가 없으면 인권도 재산도 지킬 수 없고 사람답게 살 수도 없다. 국제회의에 의자도 없고 발언권도 없다. 자유가 박탈된 노예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고, 역사는 반드시 제대로 알 때까지 되풀이 된다.”는 교훈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2015년은 광복 70년이고 석주 선생의‘대한민국 임시정부’국무령 취임 90주년이 된다.
오늘날 다시금 극우로 치닫는 일본에 비해 우리국민의 애국심은 점점 희박해져 가고 있다. 이에 사회각계에서 뜻있는 분들이 모여 선생이 실천한 숭고한 구국정신과 애국애족의 삶을 본받기위해 -국무령 이상룡 기념사업회-를 창립하는 바이다.
2014년 10월 17일
석주 이상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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