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경북=경주시] 한수원 주관 '제3회 경주문학상 수상자' 선정

  • 등록 2014.12.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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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부문, 이여명 '돌을 쪼다', 수필부문 최태호 '허수아비'

한수원 주관 ‘제3회 경주문학상 수상자 선정’

 

시(詩) 부문, 이여명 '돌을 쪼다'

수필 부문, 최태호 '허수아비' 

 

한국수력원자력(주) 윤청로 본부장은 경주문학의 위상을 높이고 경주문단을 활성화시켜 문화예술의 천년고도답게 문학중심지로 발전토록 하는 경주문학상을 제정하여 ‘경주문학상운영위원회’가 주관한 ‘제3회 경주문학상 수상작’으로 시 부문에는 ‘이여명’(본명 이종백)의 ‘돌을 쪼다’와 수필부문에는 ‘최태호’의 “허수아비”가 선정돠었다.

 

아울러 오는 20일 오전11시 경주예술의전당 지하 센텀홀에서 경주문학인 1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3회 경주문학상 시상식을 가질 예정이다.

 

시 ‘돌을 쪼다’는

석수가 돌 속에서 거북이의 형상을 쪼아 내는 과정을 무리 없이 감동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는 작품으로, 자연석을 다듬어서 조각 작품을 만드는 장인의 예술적 창작 정신을 치밀하게 시화해 내었다는 심사평을 받았다.(심사위원 : 김종해, 허형만, 신규호)

 

수필 ‘허수아비’는

현직을 물러난 화자를 허수아비에 빗대어 놓고, 허수아비를 조롱하는 참새들을 성가신 손자들에 비유해, 수필 마무리에 ⌜계절이 돌아오면 허수아비에게도 새로운 임무가 주어지고, 나에게도 자라난 손자들이 찾아와 웃음을 줄것이다는 넌지시 삶의 회한을 위로받는 장면이 멋지다는 심사평을 받았다.(심사위원 : 도창회,구활 )

 

윤청로 경주문학상운영위원장은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는 찬란한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우리민족의 전통과 영광이 있는 지역 이라며 경주문학상을 계기로 경주지역 문학이 한국문학을 넘어 세계적 수준으로까지 발돋움하기를 희망”한다며 소감을 전했다.<자료제공, 문화예술담당>

 

 

 

허수아비

 

최태호

 

추수가 끝난 들녘에 허수아비가 서 있다. 누더기에 낡은 밀짚모자를 쓰고 찬바람을 맞으며 겨우 몸을 가누고 있다.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 있어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 역할이 끝난 허수아비, 아직은 일 할 힘이 남아있으나 농부의 마음은 그를 떠나버렸다. 지켜온 것 다 내어주고 홀로 남은 허수아비, 지난날을 회상하는 멍한 눈빛이 서럽다.

 

아이들이 다녀갔다. 내 뒤를 이어갈 새싹 같은 손주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몰려왔다. 늦가을 허수아비처럼 할 일 없던 내게, 즐거운 소일거리가 생겼다. 함께 텃밭을 가꾸며 옥수수와 감자를 수확했다. 고향 집에도 가보고 선영에 벌초도 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집안에 활기가 넘쳤다. 닫혔던 문들이 열리고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한 무리의 참새가 허수아비 위로 날아와 앉는다. 길게 벌린 팔위로 빈틈없이 모여앉아 쉼 없이 재잘거린다. 족히 사오십 마리는 되어 보인다. 밀짚모자 위에도 빈자리가 없다. 앉을 자리가 없는 새들은 어지럽게 주위를 돌며 춤추듯 날고 있다. 참, 많이도 왔다. 어디서 왔을까? 주변이 온통 새소리로 가득하다. 나를 보러왔던 손주들의 수다 소리 같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이 귀여워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늙어가는 증거라고 했다. 불현듯 옛 친구가 그리워지거나 떨어져 사는 형제들이 생각나는 일도 나이 탓이라 했다. 요즘 들어 고향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역할이 끝난 무대를 멀리 떠나고 싶어서이다. 눈만 뜨면 할 일이 지천인 그곳에서 건강을 돌보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

 

오늘도 남몰래 고향 마을 다녀오다 들녘에서 허수아비를 만났다. 인적이 끊어진 텅 빈 들녘, 그만한 존재도 없다. 꿋꿋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모습이 믿음직한 수문장 같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존재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 영락없는 뒷방 늙은이 신세다.

 

지난날 풍요로운 들녘을 지켜낸 허수아비, 그의 권위가 처음부터 실추된 건 아닐 것이다. 새들도 한때는 먼 길을 돌아서 갔을 것이다. 역할이 끝났다는 이유만으로 남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허수아비, 낯설지가 않다.

 

현직에서 물러나던 날, 가장의 권위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눈빛만 보고도 잘도 움직여주던 가족이 꼼짝을 않는다. 달려와 안기던 아이들 간 곳이 없고, 믿었던 사람조차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다. 사소한 것들은 셀프서비스로 바뀌고 하나씩 자급자족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날 사랑채에 기거하시던 할아버지는 그 권위가 절대적이었다. 마을을 다니며 소일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누구도 맞설 수 없었다. 살아온 경험과 연륜만으로도 가정과 사회에서 어른 대접을 받았다. 그 시절 노후란 특별한 예우기간처럼 보였다. 이제 그런 호사는 꿈도 꿀 수 없다. 자칫하면 애완견보다도 순위에서 밀려나는 세월이다.

 

참새들은 성가신 아이들 같다. 이른 새벽, 명자나무 가지에 모여 앉아 단잠을 깨워놓기 일쑤다. 기왓장 속에 알을 낳고 새끼를 길러 베란다 주변이 깨끗할 틈이 없다. 마음 놓고 빨래를 널어놓을 수도 없다. 이로울 것 하나 없지만, 그들마저 없다면 주위가 너무 적막할 것 같다. 밤 낯없이 꼭꼭 닫혀있는 대문들, 온종일 텅 빈 들녘 같다.

 

영악한 새들이라 허수아비의 처지를 알고도 남았을 것이다. 두 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있지만 거침이 없다. 부리로 모자를 쪼는 놈도 있고 옷깃을 스치며 저공비행 하는 놈들도 있다. 누워있는 내게 겁 없이 말 타기 놀이를 하던 아이들의 모양새다.

 

갑자기 그들이 날아오른다. 소리 없이 나타나 한바탕 소란을 떨고는 순식간에 작은 점들이 되어 사라진다. 다시 정적 속에 묻힌 들녘이 손주들이 떠나간 빈집처럼 허전하다. 새들이 날아간 산그늘을 향해 웃고만 있는 허수아비, 찬바람이 그의 몸을 흔들고 지나간다.

 

가을이 끝나면 새들도 모두 떠나갈 것이다. 들녘엔 흰 눈이 내리고 기나긴 겨울이 시작될 것이다. 혹독한 시련을 앞에 두고도 웃음을 잃지 않는 허수아비, 돌아올 계절이 희망이 되고 있다. 준비도 없이 맞이한 내 삶의 겨울, 나에겐 다시 돌아올 계절이 없다. 인사도 없이 떠나간 나의 봄은 돌아올 수가 없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지나온 들길이 까마득하게 이어져 있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데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간다. 괴롭고 힘든 시간보다 행복한 시간이 빨리 간다 했는데 즐거울 것 하나 없는 시간들이 너무나 빨리 가고 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생 노 병사의 과정이 순식간에 다가서고 있다. 앞서 간 사람들이 그랬듯이 이제는 떠날 준비를 할 때다. 아는 이들의 기억 속에 좋은 모습들을 남겨주고 홀연히 바람처럼 떠나고 싶다.

 

들녘을 돌아 다시 날아온 새들이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다. 아이들이 돌아가던 날 소란 뒤에 오는 고요함이 좋기도 했지만, 나는 어느새 그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계절이 돌아오면, 허수아비 너에겐 새로운 임무가 주어질 것이다. 나에겐 몰라보게 자라난 손주들이 찾아와 웃음을 안겨줄 것이다. 아침 햇살 같은 그들의 미소에 내 삶의 회한도 조금은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허수아비 너에겐 돌아올 계절이 있고, 나에겐 새싹 같은 아이들이 있다. 눈보라 뒤를 숨어서 따라오는, 봄 같은 아이들이 있다.

 

 

수필 심사평

 

수필을 간혹 진솔성이 강한 글로 치부한다. 화자의 의견이 되도록 솔직하면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는다는 뜻에서 한 말이기도 하다. 허기사 진솔하다고 다 감동을 주겠는가.

 

수필 글이란 자기 나성(裸性)의 소산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인생에 주는 뭔가가 있어야 감동이 되지 않겠는가.

 

수필 ⌜허수아비⌟는 현직을 물러난 화자를 허수아비에 빗대어 놓고, 허수아비를 조롱하는 참새들을 성가신 손주들에 비유해, 수필 마무리에 ⌜계절이 돌아오면 허수아비에게도 새로운 임무가 주어지고, 나에게도 자라난 손주들이 찾아와 웃음을 줄 것이다.⌟는 넌지시 삶의 회한을 위로받는 장면은 멋지다.

 

문장력도 달관되고 글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뽑는 마음이 가볍다.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 도창회(글), 구활

 

당선소감

 

최태호

 

끝이 없다는 문학의 길을 겁 없이 나섰습니다. 아무래도 그 먼 길을, 너무 늦게 나선 것 같습니다. 걸음을 재촉해 보지만 어둠은 쉽사리 걷히질 않습니다. 갈수록 그림자는 커져만 가고 어렴풋하든 형체마저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수필은 흡사 먼 산을 보는 것 같습니다.

 

멀리 있을 땐 저렇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다가설수록 산은 보이지 않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숲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지금도 벅찬데, 수필계 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체험을 소재로 한 산문수필에서 벗어나 창작수필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산 넘어 산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한 가야만 하는 길임을 알고 있습니다. 한 걸음씩 다가서는 연습을 하는 중입니다.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에게 경주문학상은 한 줄기 빛이 되어주었습니다.

 

예향의 도시 경주에 향토 문인들을 위한 문학상이 제정된 것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다른 도시의 문인들, 모두가 부러워하는 상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 믿습니다. 본상을 제정해 주신 한국수력원자력(주) 월성원자력본부와 부족한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참석하신 모든 분께 즐거운 성탄과 행복한 새해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약력)

1948년 경주출생

경주문예대학 수료

1998년 월간문예사조 신인상

2000년 월간수필문학 추천완료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경주문협, 회원

 

 

수필가 최태호

 

 

 

 

돌을 쪼다

 

이 여 명

 

돌을 쫀다 돌 속으로 들어가려는 듯 여문 돌을 쫀다.

 

돌 속에는 거북이 살고 있다 돌이 태어날 때부터 그 속에 들어앉아 있다 석공의 눈에는 거북이가 보인다 좌우로 훑어보며 먹 나누기를 한다.

 

망치 높이 들어 내려친다 불필요한 부분 뭉텅뭉텅 잘라낸다 목 아래 혹을 뗀다 거북이 다치지 않게 돌을 쫀다.

 

나뭇결같이 돌에도 결이 있고 암수가 있는 법, 굵은 금과 잔금, 가로와 세로결 따라 정과 망치 고쳐 쥐고 탕, 탕, 탕 돌 가죽을 벗긴다 망치는 정 꽁무니치고 정 머리는 돌을 친다

 

코와 눈 발라내고 발가락을 끄집어낸다 16날, 24날 정으로 잘게 도드락다듬하고 마지막 날다듬한다.

 

거북이 드디어 허물 벗고 빠져나온다 돌 속에는 탑이 있고 석등과 당간지주 불상이 있다 사람도 돌 속에 들어있다 다만 그 껍데기를 깨지 못할 뿐이다.

 

<시 심사평>

‘경주문학상’ 시 장르의 심사를 위하여 ‘한국문인협회’에 모인 심사위원 3인은, 실무 담당자로부터 넘겨받은 작품을 먼저 장시간에 걸쳐 각자 면밀히 검토하였다. 검토 후, 심사위원 각기 우수작을 1-2편씩 선정하였고, 선정된 작품을 놓고 의견을 나누어 최종 선택하기로 하였다. 그 결과, 응모 번호 1번의 작품인 <돌을 쪼다>를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더구나, 심사위원 공히 위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똑같이 선택하게 되어, 이견 없이 만장일치로 정할 수 있었다.

 

시 <돌을 쪼다>는 석수가 돌 속에서 거북이의 형상을 쪼아 내는 과정을 무리 없이 감동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는 작품으로, 자연석을 다듬어서 조각 작품을 만드는 장인의 예술적 창작 정신을 치밀하게 시화해 내었다는 평을 받았다.

“돌을 쫀다 돌 속으로 들어가려는 듯 여문 돌을 쫀다”로 시작하면서 “돌 속에는 거북이가 살고 있다 석공의 눈에는 거북이가 보인다”로 이어지는 묘사가,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손에 도구를 들고 조각에 임하는 듯한 실감과 함께 창작 과정의 희열을 느끼게 해 주고 있다. 지나친 비약이나 과장 없이 평이한 듯 하면서도 범상치 않게 느껴져서 매우 자연스러웠다. 돌을 쪼아 조각 작품을 만드는 장인이나, 언어를 다듬어서 시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이 다를 바 없음을 깨닫게 해 주는 작품이다.

 

이 외에, 동일인의 작품인 <청송 백자>도 대대로 물려받은 사발을 소재로 하여 그릇을 만드는 과정을 정서적으로 농밀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돌을 쪼다>와 함께 좋은 평을 받았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시어, 한국 시단을 풍요롭게 하는 데 이바지하시기 바란다.

 

2014년 11월 28일

심사위원 김종해 허형만 신규호

 

당선소감

 

어릴 적부터 시를 쓰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일기를 쓰지 못해 선생님 앞에 불려 나간걸 보면 글 쓰는 제주는 없었는가 봅니다 그러나 오랜 공직생활 중 여러 읍면동을 다니면서 그 지역마다의 특색과 풍광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애환들 놓치기가 아쉬워서 무언가 글로 남긴다는 것이 시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느 장르의 문장도 아닌 그저 멋대로 적었는데 그 분량이 한 권 책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냥 글이 좋고 재미가 있었습니다 바깥의 화려함보다 그늘진 뒷골목이 좋았습니다 시멘트 담벽보다 돌담을, 아침 해보다 저녁 노을이, 도시보다는 농촌에 더 애정이 갔고 사물의 형상보다는 내면의 존재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당선 시 돌을 쪼다도 그 맥락이라 생각합니다 석물공장을 몇 차례 찾은 후의 산물이었습니다 직접 체험하고 같은 호흡으로 느껴야만 진정한 시가 태어난다고 믿었습니다 늦깎이 문인으로서 부끄럽지 않는 시, 더 웅숭깊은 시, 그리고 제 자신 돌 속에 든 거북을 끄집어내는 끈기와 그 돌 쪼는 설렘으로 시를 쓰고자 합니다.

 

오늘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애쓰신 경주문협지부장님, 월성원자력 관계자님과 제 작품을 지목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경주문협회원님들과 저의 졸필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과 기쁨을 함께하며 경주의 문인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월성원자력과 경주문학의 발전을 기원드립니다.

 

이여명/본명 이종백

1950년 경주 출생

2004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2006년 공무원문예대전 우수상 수상

경북문협회원 경주문협회원 시in동인

 

시인 이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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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경북/문화부 한형철 기자 기자 newsg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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