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뉴스경북=김재원 기자] ‘다시 처음처럼’이라는 슬로건으로 경북서북부노인보호전문기관이 개관 1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강성조 경상북도 행정부지사, 도기욱 경상북도의회 부의장, 김학동 예천군수, 김은수 예천군의회의장,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 사무처장 탄웅스님, 용문사 주지 벽담 청안스님, 보문사 주지 청오 도문스님을 비롯한 노인 학대예방과 노인 인권보호에 앞장선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기념행사는 경북서북부노인보호전문기관 황은정 관장의 경과보고를 시작으로, 경북서북부노인보호전문기관이 그동안 노인 학대예방사업에 흘린 땀과 결실을 보여준 ‘10년의 발자취’라는 주제의 동영상으로 이어졌다.
또한, 노인 학대예방에 앞장서 주신 유공자에 대해 경상북도지사의 표창을 시상하고, 노인 인권보호를 위해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라는 주제로 공모전을 개최해 편지, 시, 삼행시 분야에서 당선된 9명에 대해 상장과 부상을 수여했다.
특히, 편지분야에서 최우수로 당선된 김은혜씨의 ‘할매, 그거 기억나요?’라는 편지낭송 시간은 참석한 모든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강성조 경상북도 행정부지사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1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어르신들의 권익보호에 전력을 다해주신 노인보호전문기관 관계자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다”는 격려의 말씀을 전하고, “앞으로도 노인복지와 노인 인권증진에 중추적인 역할을 다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경북서북부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는 이날 개관 1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각계각층에서 보내준 후원금으로 피해학대 어르신 20가정에 어르신들이 여름을 시원하게 지낼 수 있도록 선풍기, 마스크, 먹거리 등 물품키트를 지원했다.
2020년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공모전 참가신청서
성 명 | 김ㅇ혜 | 생년월일 | 1985.02 | 연락처 | 010-xxxx-xxxx | |||
주 소 | 경북 예천군 호명면 | |||||||
직업/소속 | | | ||||||
공모분야 | □ 시 | ∨ 편지 | □ 3행시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中 1개 선택) | |||||
제 목 | 할매, 그거 기억나요? | |||||||
내 용 | 할매, 기억나요? 당신의 큰 아들, 나의 아빠가 이혼하고서 갈 데 없는 언니와 나를 5년동안 키워 주고서 새엄마랑 살게 되어 트럭에 짐을 싣고 떠나던 날. 트럭 앞자리에 14살 언니와 11살 내가 말없이 타고서 조용히 눈물 흘리다 뒤를 돌아다 봤을 때에, 할매 할아버지 두 분이서 눈물을 얼마나 흘리시던지. 우리가 못 봤는 줄 알았지요? 트럭이 골목길로 사라져 안 보일때까지 두 분은 초록색 녹슨 대문 앞에 서서 계속 울고 계셨었지요. 우리는 그 모습 아직도 기억납니다. 새엄마랑 함께 살 집에 도착해서 이불을 덮어쓰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새엄마 밑에서 어찌 크는지 궁금하셨는지 할아버지랑 할매랑 두 분이서 새벽 첫차 버스를 타고 올라 오셨었지요. 그냥 이유없이 올라오면 새 며느리 눈치가 보일까 싶어 다 익지도 않은 홍시를 양동이 가득 담아 오셨었지요. 애들이 홍시를 좋아한다며 멋쩍게 웃으시며 들어와 애미도 함께 먹으라며 가득 들고 온 홍시를, 마당에 펼쳐 놓고 하나하나 익어 까먹을때마다 할매 할아버지 그리워하는 마음 가득 안고 한입 한입 아껴 베어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도 할매집 마당에 있는 감나무를 보면 그날이 생각이 나요. 내가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게 되던 날. 연세가 많고 거동이 힘들어지신 할아버지께서 식장에 못 오시고 할매도 병수발 드시느라 못 오셨지요. 나를 키워 준 건 우리 할매 할부지인데, 내 결혼식도 못 오시고 집에 계신 할매 할아버지 생각이 나, 신부 화장 지워질 정도로 통곡을 했었어요. 우리 키우시느라고 너무 고생하셨는데. 막노동에 과수원 허드렛일에, 남의 집 일 다 도와주고 번 돈으로 우리에게 통닭 사주시고 맛있는 것 사주시던 우리 할매 할아버지. “우리 은혜 시집 갈 때까지만 살면 좋겠다” 라며 술만 드시면 이야기 하시던 할아버지, 그렇게 아프셨는데도 하루하루 버티시더니 정말 제 결혼식 보고 몇 달 후에 돌아가셨지요.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혼자 되신 할매도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요양원에 오래 계실 적에, 치매까지 와서 모든 것 기억에서 점점 희미해졌지요. 그런데 우리 할매, 내 둘째아이 출산일은 기억에서 얼마나 꽉 붙들고 계시던지. 출산 예정일 즈음에 할매가 아침마다 전화 해 “아 낳았으?”하고 물으시던 할매. 둘째 낳고 “할매, 나 둘째 낳았어”하고 전화를 걸어 말씀 드리니 “수고 했어, 잉? 참 수고 했다.” 하시고는 기적같이 정신이 돌아 오셨지요. 애 낳고 몸조리 해줄 친정엄마가 없어서 할매는 그 몫까지 하시려고 그렇게 나를 생각하셨나 봐요. |
제 목 | 할매, 그거 기억나요? |
내 용 | 열심히 살아 새집 장만해서 할매 모시고와서 하루 주무시던 날. 새벽에 할매 옆에 가서 누웠는데 마흔 다 되어 가는 손녀, 아직도 애기인줄 아시는지 잠든 제 머릿결을 부드럽게 만져 주시는데 뒤돌아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요. 엄마가 없어서 어디 어리광 부리지도 못하고 살았는데도 할매만 보면 애기가 되는 손녀, 벌써 애가 둘이나 있는데도 아직도 할매 앞에서는 마냥 어린 손녀이고 싶은가봐요. 할매는 자꾸만 노인이 되어 냄새도 나고 귀도 안 들린다고 우스갯 소리로 말씀하시지만, 저는 할매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잘 알기에 그저 위대해 보일 뿐이에요.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농사 지으시며 자식 넷을 오롯이 키워 내시고, 또 다시 손녀 둘을 키우기 위해 남의 집 과수원 일 도와 하루하루 품삯으로 우리를 훌륭히 키워 내셨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지요. 할매, 나는 할매가 키워 줘서 그런지 뉴스에 나오는 노인 인권이야기나 나이든 부모를 학대 한다는 기사만 보면 가슴이 쿵 내려 앉아요. 그리고 지나가는 노인 분들만 보면 그저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온전히 할매한테 넘치는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겠지요. 그 사랑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것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10년만 더, 아니 20년 더 할매가 오래오래 나랑 함께 살면 좋겠어요. 하루하루 쇠약해 지시는 우리 할매, 우리 지금처럼 맛난 음식 있으면 함께 먹고, 우리 아이들 크는 것 함께 보며 남은시간 정내며 살아요. 평생 갚아도 다 못 갚을 사랑, 내가 더 잘할게요. 부를 때마다 이내 눈에 눈물이 고이게 되는 그 이름, 나의 하나뿐인 할매. 키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말로 다 못할 만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
사진.자료제공/어르신복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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