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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경북=안동목성동주교좌성당]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 안동교구사제단 단식기도회 저녁 시국미사에서 성명서 발표(1일차)

 

안동교구사제단 ... 시국미사에서 성명서 발표

5.19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안동교구사제단의 단식기도회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저녁 8시부터 안동목성동주교좌성당에서 시국미사가 열렸다.

전장호 프란치스코 신부(문경 가은본당주임신부)​의 주례로 열린 시국미사에서 신대원 요셉 신부(우곡 성지담당신부)가 강론을 전했으며 박윤정 바오로 신부(봉화 본당 주임신부)가 성명서를 발표했다.(성명서 전문은 본지 전편에 게제 되어 있음)

사제 15분과 수녀 9분을 포함 170여 분이 시국미사에 함께 했다.

시국미사는  ​매일 저녁 8시에 열리며 5.22일까지 이어진다.

시국미사가 열리기 전 세월호 참사와 18대 대선 부정선거 및 현 시국에 관련된 영상을 통한 참회와 각성의 시간도 제공된다.​

신자들 뿐만 아니라 지역 단체 및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시국미사 1일차 모습을 사진으로 싣는다.

순서나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사진으로도(누구나)  느끼는 감동이 크리라 기대해 본다.​

* 본지 기사내용과 사진은 뉴스경북' 허락없이 사용하셔도 됩니다.

  단식기도회 마지막까지 취재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시정이나 격려 및 후원 등은 뉴스경북' 자유게시판에 밝혀 주시면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뉴스경북 편집인 / 김승진 ​(010-5895-6166)

 

 

 

[신대원 요셉 신부(우곡 성지담당신부) 강론]

 

<세월호 진상규명과 민주주의 회복>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6,24)

 

1. 우리는 지금 신앙인으로서 기쁜 부활시기를 보내고 있고, 또 “성모의 성월이요 제일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느 시인이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하고, “春來不似春! 봄은 왔건만 마치 봄이 아닌 것 같구나.”라고 노래한 중국 한나라의 미녀 왕소군의 슬픈 사연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그리고 광복을 염원했던 신석정 시인의 “꽃 덤불”을 목 놓아 읊조리지 않더라도 확실히 봄은 왔건만 아직 봄이 아닌 것 같은 마음을 어찌 감출 수 있겠습니까? 갈수록 “웃고 있어도 눈물이”납니다.

 

2. 시나브로 위협하는 낡은 핵발전소와 항거하는 국민들, 천안함 침몰 때 사망한 군인들, 쌍용자동차해고노동자들의 죽음, 그리고 아직 피워보지도 못하고 차갑고 어두운 바다에서 세상을 달리한 세월 호 희생자들의 넋들과 진실과 다른 왜곡된 소문으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그분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또 어제가 광주 5.18민중항쟁 35주년이 되는 날이 아닙니까? 그렇지만 갈수록 이 나라는 진실조작과 은폐 등으로 인해 국민은 자꾸만 갈등이 분열이 심화되고, 그 삶의 질은 피폐하여 흉흉해져가고 있고, 가진 자들과 국민의 지도자들의 탐욕은 끝 간 데를 모르고 있으며, 정권을 거머쥔 자들의 행태는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현실과 마주하면서, 이래저래 마음이 착잡하고 무겁습니다. 또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밖에 들지 않는 요즈음입니다.

 

3. 2015년 5월을 보내면서, 이 땅의 하느님 백성으로서, 또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불의에 맞서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살아가고 있는 제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 존재인지 스스로에게 물어 봅니다. 민주주의란 무엇입니까? 국민이 주인 되어서 다함께 기쁘고 떳떳하게, 그리고 함께 기쁘고 흥겹게 손 맞잡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무너져가는 민주주의 앞에, 무너져 가는 국민의 생존권 수호를 위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채 손 놓고 물끄러미 쳐다만 보아야 하는 이 현실이 얼마나 참담한 일인가를 뼈저리게 느끼는 오늘입니다. 1970년대에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1980년대에 대학을 보낸 저로서는 당시에 횡행했던 서슬 푸른 공포정치를 여전히 이 시대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또다시 “신 유신”의 공포가 엄습해 오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마저 듭니다. 또다시 “파시오 정치”가 재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파시오가 무엇입니까? 국가지상주의(國家至上主義)를 뜻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충성”이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용서되는 듯이 주장하는 이념이지요. 국가지상주의는 정치적으로 급진적 우익주의, 반공주의, 국가주의, 전체주의, 권위주의, 국수주의적인 정치 이념이자 국가자본주의, 협동조합주의 경제 사상입니다. 파시즘은 끊임없이 개개인의 자치 능력을 강조하기 때문에 평등을 부정하며 불평등을 존재 또는 유발해야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 하느님인적인 이념이지요.

 

4. 파시오 즉 국가지상주의는 결국 몇몇 힘 있는 권력자들과 자산가들이 서로 결탁하여 국민의 여론을 휘어잡고 국가와 국민을 지배하려는 수단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러한 전체주의적 발상이 또다시 이 나라 도처에서 이루어지려는 시도들이 엿보이는 것은 저만의 느낌이겠습니까? 예수께서는 이러한 전체주의적인 발상에 대해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도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 너희 가운데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10,42-45)고 단호하게 거부의사를 천명하셨습니다. 힘없고, 먹고 살기에 바빠서 나름대로 잘나고 봉사해줄 것 같은 사람들을 뽑아 국민을 대신할 일꾼으로 뽑아놓았더니, 도리어 국민의 삶을 억압하고, 눈멀게 하고, 국민의 재산을 도적질하고, 국민의 생명을 지켜내지 못하고, 도리어 군림하려드니, 참으로 분통이 터지고 이가 갈립니다.

 

5. 대한민국은 누가 주인입니까? [헌법 제1조 2항] : 국민 주권주의에 대한 선언이 나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또 최고 행정수반으로서의 머슴인 대통령은 누구입니까? [제66조 2항] :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임을 진다.”-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면 국민은 누구입니까? 모든 사람들이 법 앞에서 “평등권, 자유권, 사회권, 청구권, 참정권”을 가지고, 이를 누리기 위해 국민은 세금을 내어 숱한 머슴(공무원)들을 먹여 살릴 의무를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어떻습니까? 머슴들이 거들먹거리며 주인행세를 하고, 주인을 학대하고, 주인을 억압하고, 온갖 거짓말과 공갈로 협박합니다. 또한 머슴에게 빌붙어서 개처럼 충성하는 자들은 머슴들이 만든 온갖 유언비어를 이른바 “찌라시 언론”이나 “SNS”를 통하여 끊임없이 퍼 나르면서 확대재생산하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지요. 이 과정에서 진실은 묻히고 거짓이 판을 치며, 거짓 혹은 가짜들이 도리어 “진실”을 운운하는 판국이 오늘날의 이 땅의 현실입니다. 과연 그들이 그렇게 해서 얻으려는 이익은 무엇일까요? 권력과 재산에 빌붙어서 자신의 안위를 담보 받으려는 파렴치한 태도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대표적 사건이 곧 “성완종 게이트”가 아니겠습니까? 물론 이러한 그들의 거짓된 놀음에 의해 국민들은 자신들이 죽음의 골짜기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줄도 모르고, 목숨 줄이 서서히 조여 들어와도 그들을 하느님보다 더 신뢰하는 듯 보이니 환장할 노릇이 아닙니까?

 

6.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누구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하면서 많은 이를 속일 것이다.”(마태24,4-5) “속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는데도, 그분을 주님으로 믿는 우리 신앙인들이 더 잘 속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확실히 “국민주권”을 의미하는 “민주주의”는 또다시 고사위기에 놓여있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동안 온갖 고초와 피를 흘리면서까지 간신히 “민주주의”라는 글자를 쓰고 씨를 뿌리기 시작했는데, 민주주의가 채 땅에 떨어져 움도 트기 전에 또다시 말라가는, 말라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누군가는 지금이 “민주주의 시대가 아닌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어디 이게 민주주의입니까? 사람들이 죽어가고, 주변의 환경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국민은 말한 마디 못하고, 말을 하면 즉시 정권의 시녀들인 언론이 여론몰이 하여 죄인으로 몰아버리는 상황이 현실인데, 어디 이것이 민주주의 시대입니까? 형편없는 후진국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7.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이면서 또 이 나라의 국민들인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을 위해서 또 예수님의 말씀을 한 자락 들려드리겠습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어찌하여 이 시대는 풀이할 모르느냐?”(루카12,56) “시대의 징표 혹은 징조”를 읽고 그것을 해석할 줄 알아야 또한 참으로 민주시민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세계의 유력한 어느 일간지에서는 우리 국민들은 고등교육을 받았으면서도 그 의식은 “방글라데시”보다 못하다고 비꼽니다. 이는 곧 우리가 시대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렇게 된 까닭은 곧 이기주의, 탐욕주의, 개인주의가 빚낸 결과일 것입니다. 지난 해 8월에 다녀가신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말씀하셨지만, 그보다도 먼저 예수님의 말씀이 먼저 생각납니다. “너희는 주의 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12,15)

 

8. 우리는 언제부터 “원칙”을 대단히 소중하게 여기는 민족이 된 것처럼 떠들어댑니다. 그리고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을 “원칙주의”의 모델이자 상징인 것처럼 우상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칙”만 있고 “자비(사랑)”가 없다면, 그는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자비가 없는 원칙은 허울 좋은 감언이설로 포장된 “거짓”에 다름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6,36)고 하셨지요. 사실 유가의 위대한 스승 공자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옛것은 지키면서도 새 것을 알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는 보수와 진보라는 좌우 두 날개를 제대로 펼쳐야 날 수 있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진보는 자꾸만 갈라지려 하고 있고, 보수는 부패해버렸는데도 국민은 도리어 진보를 나무라고 부패한 보수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는 듯한 형국입니다. 이는 원칙을 이야기하지만 원칙이 없고, 자비를 이야기하지만 자비가 없는 빈껍데기, 속빈 강정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니 이 나라는 평화가 없고 매일 상대방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동네 시정잡배들이 마음 내키는 대로 경영하는 구멍가게라고 밖에 달리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예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같지 않다.”(요한14,27)라고 하셨지요? 이 참 평화를 누리려면, 참된 의미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 해답을 또 예수님으로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5,42) 그래야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대규모 사사건건들에 대한 진실을 제대로 규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진실을 규명하는 데는 동의한다”고 하면서도 도리어 진실을 은폐하려는 시도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으니 참으로 슬프고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 평화는 정의로 이루어지고, 정의는 자비로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으면 국민, 그 가운데서도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파하고 신음하게 되며 고통을 받게 되어 있지요.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도 “고통 앞에서는 결코 중립을 지킬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우리 국민은 불쌍합니다.

 

9. 지금 우리 안동교구 사제단은 참으로 우리 국민이 불쌍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반만년 동안 이 땅을 지켜 온 위대한 우리 국민이 집권여당과 정권의 놀음에 놀아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불쌍해져 보이는지요? 나라의 살림살이, 국민의 생명과 인권, 알 권리 등등 모든 것을 도적질 당해도 도적질 당한지도 모르는 채 그저 “조삼모사”의 사자성어처럼 이리저리 조롱당하고 이용당하고 있으니, 어찌 불쌍하다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안동교구 사제단은 “천안함” 침몰로부터 시작되어 사대강 사업, 해외 자원 개발 비리, 그리고 “세월 호” 참사뿐만 아니라 관권 부정선거, 성완종 게이트 등등 일련의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만한 굵직한 사건들에 대해 하루빨리 “그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분명히 가려낼 것을 요구하면서 단식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사제단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거리에 총을 들고 나가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노릇도 아니질 않습니까? 다만 그 숱한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언론을 조작하며 국민을 불쌍하게 만든 어둠의 세력들을 향하여 “가식을 버리고 진실을 드러내라”고 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또 국민을 먼저 생각하라고 외치면서 하느님께 그러한 용기를 달라고 청하는 일밖에 무엇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이미 이를 위해 안동교구 사제단은 5월 18일부터 진도 팽목항에서 단식기도회를 갖는 정의구현사제단과 또 전국 각 교구에서 이어지는 사제들과 깊은 연대를 맺고 있습니다. 우리교우들도 이러한 사제단의 취지를 이해하고 함께 연대하며, 참으로 위태롭기가 짝이 없이 돌아가는 이 나라를 위하여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주변에 널려 있는 “돌들이 소리를 지를 것”(루카19,40)입니다.

 

10. 끝으로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는 시를 읊는 것으로 강론을 마칠까 합니다. 이 시는 신동엽이 1967년에 발표한 시로, 우리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여러 의미 있는 사건들을 바라보던 시인이 허위적인 것(껍데기)이나 겉치레는 사라지고, 순수한 마음과 순결함만이 남아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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