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시인 김석현의 두번째 이야기를 하려한다.
" 운동권 학생으로, 투사로 비쳐질지 모르겠으나 솔직히 내가 해 온 일이 너무도 미약하고 소극적이어서 과분하고, 굳이 말하라면 어느날 학벌이나, 지위도 없는 농민들도 시를, 글을 써도 되는구나. 그렇다면 글로서도 그들을 격려하고 함께 어울릴수도 있겠구나 하는 데에서 시작한 것이지" 라고 했다.
김석현은 그러면서 시인? 문학? 그런 고급적인 문자말고 그냥 진보적인 사고를 지닌 옆집 아저씨라고 불러 주었으면 했다.
1989년 안동에서 만들어 지는 참꽃문학회(회장, 권삼문)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농꾼 시인으로서의 길(?)을, 일상을 보면 이해가 간다.
그러던 1991년 가을 드디어 20여 명의 회원들과 '참꽃문학' 창간호를 발표한다.
<안동 참꽃문학회 창간호 표지>
정치? 문학? 농사?
"그렇게 구분 되는지 몰라도 그땐 모두가 그냥 글을 쓰며 이웃과 친구들과 어울렸쟎아!."
참꽃문학회가 발표한 '참꽃문학-창간호'에 농꾼시인 김석현 회원을 소개한 글이있다.
'김석현 회원은 그 체구가 워낙 작아 흡사 잘생긴 얼룩 송아지 같다. 우리 속담에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있듯이 김석현 회원은 안동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래 지금까지 통뼈의 야무진 몸으로 자신의 고향마을을 지키며 몇 평되지 않는 농사와 남의 우사를 빌어 한우 24두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그는 소만 키우며 36살의 노총각 딱지를 뗄 궁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업처럼 이어져 오는 우리나라 농촌의 구조적 모순과 피폐한 현실을 개선시키고 변혁시키는 온갖 투쟁의 선두에 서서 온 몸으로 싸우기도 한다.
김석현 회원이 하는 싸움의 모습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문학행위를 통한 농촌현실의 고발이다. 이는 단순한 고발행위를 넘어 서서 기층 민중의 정치권력 쟁취라는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진화되기도 한다. 잘생긴 얼룩송아지 같은 그는 56년 11월 경북 영양의 빈농의 집안에서 4남2녀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이어곧바로 빈농인 부친을 따라 지금까지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일직면 송리동으로 이사, 일직국민학교를 마친 뒤 안동으로 유학, 이 지역 명문인 안동고교를 졸업한다. 이후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곧바로 열악한 한국 농촌의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서 농사일을 직접 하면서 기독교 농민회에 가입, 사회의식에 눈을 뜨기시작하면서 이 지역 뛰어난 아동문학가이자 사회운동가인 권정생 선생을 만나면서 타고난 문학적 감성을 개발, 본격적인 문학운동의 길에 나서게 된다. 이즈음 모든 문학의 중앙집중에 대한 심한 좌절감을 느끼고 참다운 민족문학의 건설을 위해서는 지역문화의 활발한 보급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89년 이른 봄 이지역 진보적인 문학인들과 함께 참꽃문학회를 결성, 지역문화의 활성과 지역문예운동의 참다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지난 84년도 실천문학사에 출판한 14인 신작시집 「시여 무기여」에 「고드름」외 6편을 발표하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벌여온 김석현 회원은 일찌기 국민학교 시절부터 삼국지를 독파,고교 졸업때까지 무려 10회 이상 읽어내는 등 대단한 관록(?)을 소유하면서 민중적 세계관에 입각한 한국사회 현실의 변혁을 갈구하는 투쟁적 성향, 그리고 이를 밑받침하는 사회과학서적의 탐독, 아울러 농촌을 떠나지 않고 농촌의 현실을 온 몸으로 체험해 내는 농꾼의 기질로 똘똘 뭉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김석현 회원의 현재를 결정시켜 주는 요인이 되었으며, 결국 이러한 것이 앞으로서 회원의 삶을 끊임없이 참된 농꾼으로 남게하는 조건이 될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독서량의 결과가 오히려 그의 문학 세계에서는 일견 농촌현실에 뿌리내린 우리의 본래의 농촌적인 서정과 구별되게 나타나기도 하고, 그래서 이러한 구조적으로 잘짜여진 그의 시편들은 어쩌면 고도로 잘 훈련된 지식인 시인들의 시편과 흡사하게 보이기도 한다. 이는 그가 구사하는 시의 언어들이 생생한 농촌적 체험을 바탕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도로 세련된 지적인 언어들을 구사함으로 해서 그의 시 세계를 책상물림들의 결과물처럼 낯설게 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이젠 책의 포장지를 뜯기로 했다.
책장을 넘기지 않고도 쉽게 찾아보기 위해
책제목이 드러나도록 책의 포장지를 뜯도록 했다.
일을 하다가 모르고 궁금한것이 있으면
금방이라도 찾아볼 수 있게 책의 포장지를 뜯기로 했다.
교육의 디딤돌이며 양서의 전당이란
이름과 전화번호와 위치가 선명하게 부각된
서점의 선전 포장지를 뜯기로 했다.
그랬다 지금까지는
판금서적을 지녔다는 죄명으로
불온유인물을 소지했다는 죄명으로
보안법의 올가미에 걸려 철창에 갇히는 친구를 보면
일상속에서 기름이 되고 윤활유가 되는 해방의 책은
혼자만 보고 깊숙히 은밀히 포장을해서 감추어 두는 것이라고
올바른 관점을 갖게해주고
올바른 세계관을 갖게해주는 유인물은
읽어 머리속에 기억하고 태워버리는 것이라고
그런 죄명으로 잡혀가는 친구는
정말 얼빠진 전사라고 비웃었다.
(포장지 中에서)
그러나 김석현 회원의 시적 가능성은-결국 이는 사회변혁의 가능성과 맞물려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농꾼의 시이면서도 고도로 조직화된 지식인적 시의 양면성을 갖고있는 것으로, 동지들 간의 간결한 유대와 또다른 측면에서의 민족적 정서를 천착한다면 무한히 열려 있는 민중의 세계로 나아가게 될것이다.
요컨데 세계의 변혁을 위해 먼저 선결되어야 할 과제는 자신의 정서를 자신이 디디고 사는 현장의 언어로 노래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참꽃문학 - 남효선 글>
약력
1956년 경북 영양 生
1976년 안동고등학교 졸업
1984년 「시여 무기여」(실천문학사)에 '고드름'외 6편 발표
1990년 참꽃문학회 공동대표 역임
1990년 민중당 안동시 지구당위원장 역임
김석현은 1982년 경북기독교농민회 창립회원이 된다, 1984년 실천문학 ('시여, 무기여!' 에 고드름외 6편 발표')으로 등단. 1990년 참꽃문학회 공동대표 역임. 1990년 민중당(가칭) 안동시 지구당 창당준비위원장 이었으나 그 다음해인 1991년 가을 발표된 '참꽃문학'에서는 사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90년9월 창당대회 안내장에 실린 김석현 사진>
그런 오후 김석현이 자신과 여러모로 비슷한 대포집이 있다고 해서 또 어딘가 했는데 이번엔 '보영식당'이란 곳이다.
<이러다 안동시내 명소(대포집) 소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안동의 명소는 다음에 싣기로 하겠다>
안동초등학교 옆에 자리한 오래됀 막걸리집인데 자랑인지, 이집의 역사인지 얼마나 재미나게 이야기를 해 주는지 술이 취하질 않는다. 사실은 3잔 정도 였으니 그냥 간만 본 거지?
이집은 계란말이가 2000원. 오늘 막걸리값은 전부가 6000원. 계산이 되나?
열무김치에 계란말이. 상차림이 우선 보기에는 그래도 먹다보면 배도 부르고 가격도 고만해서 지금껏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런 기본 안주가 막걸리와 간이 딱 맞는게. 누구라도 한잔 정도는 할 수 있을것 같은 집이다.
안동에 이런 집이 있어 큰 혜택을 누리는 주당(?)들이 부럽기만 하다.
이 집이 김석현과 닮았다는 것은 좀 그렇고 김석현이 이 집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해야 되겠다.
가격이 싸다는 이유 말고, 바로 옆에 일직 등 시외 면단위로 가는 버스 정류장이 있어 아무나 이집에 드나드는 편한 집이라는 것일테고 또, 뭘까?
오랫동안 말한마디 없었어도 눈인사로 금방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에 훈수를 둬도 누가 기분 나쁘게 대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과 금방 친해져 어울릴 수 있다는 재미(?). 그 때문이 아닐까!
이런 집에선 자신을 드러낸다 한들 누가 알아 주겠으며 다들 가쁜 마음으로 와서 목을 축이고 허기를 때우는 그런 사람들과 어울릴수 있어 좋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진보며 민주며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가를 느끼게 해줄려고 이집에까지 끌고 온것 아닐까?
좀전 안동 천리고가교 안동 영감들 장기놀이터에 데려간 것도 김석현이 잡기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런 이웃들과 살갑게, 정겹게 살고픈 그의 천성을 보여 주려 했음이 아닐까!
오래전부터 김석현에게 들어 보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
권정생 선생에 대한 이야기다.
오늘 그 이야기를 꺼내려 하기에 그이야기는 따로 들려 달라며 입을 막았다. 하지만 못참았던지 "애초 잘못된 기술로 인해 '일직 조탑리'라고 하는데 원래는 '송리동'이지. 지금은 송리1리, 2리 라고 하는데 권정생 선생이 기거했던 '조탑교회'도 송리교회 였거던" 이란다.
요며칠 김석현의 눈빛을 보고 있는데 특별히 그런 말을 할때면 정말이지 눈에서 빛을 발한다.
그런 김석현에게 천천히 하자고 했다.
아마 지금쯤 그얘기 하고 싶어 안달이 났을거다.
김석현이 들려 줄 푹 삭아 달달 할 권정생 이야기가 듣고 싶다.
오히려 내가 .
* 본 기사 내용이나 사진이 필요하시면 허락없이 사용 하셔도 됩니다
뉴스경북' 자랑스런 경북인과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