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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우 칼럼] 부자의 펜, 빈자의 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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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경북 스페셜 초대석]



[전준우 칼럼] 부자의 펜, 빈자의 펜





글과 권력의 관계


펜의 역사는 라틴어에서 시작되었다. 깃털을 의미하는 penna에서 펜(Pen)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펜이라고 하는 것이 한 때는 무겁고 값비싼 만년필을 의미하던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단순히 볼펜을 의미하는 단어로 변모되었다. 가볍고 편리한 펜을 통해 삼국지가 쓰여졌고, 국부론이 쓰여졌으며, 역사를 기록한 수많은 고전들이 탄생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작품들은 역사를 재창조하는 인물들의 마음에 환한 불꽃을 피우기도 한다. 펜의 힘이 그렇게 크다.

 

글은 권력과도 같다. 아무리 약한 사람이 쓴 글이라도 글을 통해서 사업체가 무너지는 경험을 할 수 있고,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지는 경험도 만날 수 있다. 확실히 글은 권력이다. 세상 모든 글은 권력을 내포하고 있다. 글이라는 권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어느 날 문득, 글에도 빈부의 차이가 있을 법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에 무슨 빈부의 차이가 있을까마는, 글이 권력이 될 수 있다면 빈부의 차가 있을 법도 하다 싶었다. 부자의 글과 빈자의 글이 그것이다.


부자의 펜은 가볍다. 비워진 마음으로 쓰기 때문이다. 비워진 마음에는 많은 것이 채워질 수 있다. 의미있는 것과 가치있는 것이 채워질 수 있다. 그래서 깊이있는 글도 쓰여진다. 대신에 술술 쓰여진다. 가볍게 쓰여지지만 깊이가 있다.


반대로 빈자의 펜은 무겁다. 어렵게 쓰려고 하기 때문에 답답한 글이 나온다. 부자의 펜을 통해 쓰여진 글이 애써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꾸준히 서툴고 답답한 글이 나오게 되어 있다.


수년 전, 처음 책을 써보겠다고 다짐하고 쓴 글들이 컴퓨터에 일부 저장되어 있다. 한번씩 읽어볼 때마다 부끄러움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좋은 글의 기준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어떻게든 어렵게 쓰려고 노력한 글이었다. 빈자의 글이라고 할 수 있는 표본이었다.

 

좋은 글의 기준에 대하여


좋은 글의 기준은 무엇일까?

좋은 글의 첫 번째 조건은 마음의 변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다. 글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데 가장 큰 목적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글은 불필요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글을 쓰는 데 부사와 접속사 같은 미사여구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첨삭하는 과정은 중요하다. 담백하고 단순한 글, 누가 봐도 쉬운 글을 쓰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잊지 말아야 할 진리다. 그러나 퇴고 과정에 속한다. 그 이전에 마음을 변화시키는 데 가장 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마음을 변화시키는 글이 좋은 글의 첫번째 특징이라고 나는 믿는다.

 

오래된 작품들, 예를 들어 오이디푸스왕이나 돈키호테와 같은 책을 읽다 보면 왜 시대를 거스르는 위대한 작품이 될 수 밖에 없는지, 왜 시대를 통찰하는 훌륭함의 극치라고밖에 할 수 없는지를 보여주는 단어나 문장들이 글 속에 풍부하게 녹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모든 글들은 사람의 마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굴하지 않는 의지, 강인한 생명력, 담대한 마음의 힘,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 혹은 운명과 같은 상황을 담박한 글로 담아냈다.

 

좋은 글의 두 번째 조건은 군더더기의 최소화다.

어떻게 쓰는 게 군더더기 없는 글을 쓰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군더더기 없는 글을 쓰는 정확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다. 시중에 출간된 글쓰기 책을 읽어봐도 사실 거기서 거기다. 글에 있어서만큼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쓰지 말고 이렇게 써라,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내가 보기엔 정말 훌륭한 글인데 전문가가 보기엔 그렇고 그런 글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다 정말 잘 쓴 글이나 책은 읽는 순간 잘 썼다하는 탄식이 나온다.

그런 글과 책이 있다. 글에서 무척 담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앞서 이야기한 레미제라블의 이야기처럼 아름다운 문장은 마음을 변화시키는 데 최적화된 단어로 문장의 구조가 만들어진다.

    


 

나는 가끔 이 연경당이 내 것이었으면 하는 공상을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곧잘 나의 평생소원은 연경당 같은 집을 짓고 그 속에 담겨 보는 것이라는 농담을 해 본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 숨김없는 나의 현실적인 소망이면서도 또한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허전한 꿈이기도 하다. 세상에 진정 잊을 수 없는 연인이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아마 세상에는 정말 못 잊을 집도 다시 있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24p, 최순우, 학고재

 

얼마전 웹서핑을 하다가 재미있는 글을 발견했다. 한 네티즌이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는 이유에 대해 쓴 글인데 무척 공감이 되었다. 다 기억나진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1. 자기계발서는 자기자랑 뿐이다.

2.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데 일방적인 상황만 이야기한다.

3. 듣기 좋은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자기계발서는 그런 글을 적은 책이다.

 

웬만큼 뛰어난 필력을 가진 작가가 쓴 책이 아닌 바에야 출간된 지 30년이 되지 않은 책은 구매하지 않는 나로서는 무척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자기자랑, 일반적인 상황에 대한 최선의 선택을 제시, 그리고 막연한 동기부여에 불과한 책은 읽는 그 순간에만 즐거움을 선사할 뿐이다.


모든 자기계발서가 그런 것은 아니다. 자기계발서 안에도 단계가 있다. 그래서 다양한 문장을 접해보고, 때로는 음미도 해보고, 많은 책을 접해볼 필요가 있다. 책을 고르는 안목이 있다면, 훌륭한 글을 고르는 안목도 함께 생긴다. 좋은 책과 글을 골라서 읽을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긴다.

 

세번째는 좋은 글의 조건이라기보다는,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라고 하는 게 무방할 듯 하다. 바로 모든 사물에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는 마음의 세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 인생은 낭비로구나. 걸레를 찾아내서 내가 배운 것, 내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지우고 조르바라는 학교에 들어가 저 위대한 진짜 공부를 배울 수 있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달라질 것인지!

­ 그리스인 조르바, 100p, 더클래식

 

작품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조르바는 작품 속에서 굉장히 위대한 인물로 비춰지는데, 그에게 있어 모든 것은 가치를 갖고 있다. 조르바는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인간의 모습을 가장 완벽하게 드러낸 소설의 주인공이다. 조르바라고 하는 인간이 가진 마음의 결은 아주 완벽하게 관찰하는 인간의 표본을 이야기하고 있다.

    

 

봐요, 내가 툭 까놓고 말하지요. 이 세상은 하나의 수수께끼인데다 인간이란 야만스러운 짐승에 지나지 않는단 말입니다. 잔혹한 야수면서 신이기도 하지요. 나와 함께 마케도니아에서 온 놈 가운데 불한당 같은 반역자, 요르가란 놈이 있었어요. 진짜 악랄한 놈인데, 그놈이 글쎄 울더란 말입니다. ‘왜 우는 거냐 요르가, 이 개놈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죠. ‘늙은 돼지 새끼같은 놈이 뭐 하러 울어?’ 그랬더니 그는 두 팔로 내 목을 끌어안고 어린애처럼 엉엉 울더란 말입니다. 그러고는 그 잡놈이 자기 지갑을 꺼내 터키 놈들에게서 뺏은 금화를 몽땅 쏟아 내서 한 줌씩 공중에 뿌렸어요. 보스, 아시겠어요? 그런 게 자유라는 겁니다.”

­그리스인 조르바, 36p, 더클래식

    

 

부자의 펜이 가벼워야 하는 이유

글을 쓴다는 건 어떤 형태로든지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의미와 같다. 어느 누구도 내게 글쓰는 고통을 견디며 인내하라고 이야기한 적 없다. 사업에 온 힘을 쏟아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매일 칼럼과 원고를 붙들고 있다 보면 어느덧 늦은 밤이 되어 있다. 어느 누구도 마감기한을 닥달하지 않는 칼럼과 원고를 쓰기 위해 새벽까지 붙들고 있다가 기절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며 겨우겨우 일어나 아침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출근하면 하루종일 배가 고팠다. 순전히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한 편으론 감사하면서도, 빠듯한 하루하루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깝게 지내는 대학 교수님과 늦은 밤까지 담소를 나누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술잔을 비우는 교수님의 이야기를 몹시 귀기울여 들었다.

 

전 작가. 성공하려면 가까운 사람들의 충고를 많이 들어야 돼. 어떻게 하면 쓴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을까 고민해야 된다는 말이야. 아프기는 싫은데 성장은 하고 싶다면 잘못된 거야. 그건 마치 공부 안하고 성적이 오르기만 바라는 학생일 수도 있겠지.”

 

술자리를 가지면서 교수님이 내게 전해주신 이야기는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는 게 싫고 두려웠다. 그러나 다른 방면으로 생각해봤을 때, 다양한 기회을 통해 만나는 스트레스가 글을 쓰는 데 얼마나 좋은 스승이 되는지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언젠가 존경하는 은사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스트레스는 좋은 것입니다.

힘든 일도 좋은 것입니다.

가난도 좋은 것이고, 고통도 좋은 것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있어서 스트레스는 좋은 것이다. 힘든 일도 좋은 것이고, 가난도 좋은 것이다. 그런 어려움들에게서 만들어지는 고통도 좋다. 더 쉽고, 아름답고, 좋은 글이 나오기 때문이다. 다듬어진 마음의 결에서 묻어나오는 풍요로움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과 마음의 평안을 선물해줄 것인가? 그래서 부자의 펜은 가볍다. 당연히, 가벼워야 한다.

 

    

 



전준우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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